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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by 자위심도 2023.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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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의 이력은...

 

20대에 대기업 임원.

마음의 목소리를 듣고 승려가 되어 17년을 붓다처럼 살다.

다시, 마음의 목소리를 듣고, 환속.

환속하여 사랑하는 사람과 살다가 루게릭 병을 얻다,

2022년 1월,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숨을 거두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한 어조 속에 위트를 담고 독자의 마음을 울립니다. 저는 이틀 동안 천천히 이 책을 음미했습니다. 다시 들여다 보는 책은 많지 않지만, 이 책은 그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승려가 되지 않은 저자 삶을 생각해봤습니다.

어쩌면 조금 덜 행복하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오래 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덜 위대하고 덜 숭고했겠습니다만, 누군가에겐 그것이 더 나을 수도 있고 저자처럼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가정은 가정일뿐... 사실은 여기 사실로 존재합니다.

 

지난 2022년 12월 마지막 날, 저는 저를 배신했던 연인과 이별을 고했습니다.

그 뒤에 몰려오는 고통은 아직도 완전히 나아지지 않습니다만... 이 책을 보면서 많은 위로를 얻었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어느 날, 그 고통을 느끼는 내가 있고

고통을 느끼고 있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내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지금 고통을 느끼고 있구나... 그것을 알아차리고 내버려두었습니다.

들숨과 날숨에 고통 하나씩, 하나씩 보내다보니 문득 생각이 듭니다.

이 고통은 과거를 놓지 못하는 집착에서 오는 고통이다.

연인의 배신이 아니라, 내가 집착하는 것이 바로 고통이다.

그런 생각에 이르자 고통은 그곳에서 잠시 멈추었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도달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애초에 이런 마음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미울 것도 없고 사랑만 있을테죠.

그래도 순간, 순간 찾아오는 깨달음이 상처를 보듬어 줍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입니다.

누구나 삶에서 어려움이 있고, 저마다 고통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와도 관계없고, 나이나 성별과도 관계없고, 살고 있는 곳과도 관계없습니다.

똑같은 고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타인의 상황과 나를 비교합니다.

"너의 고통은 내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저 사람에 비하면 그래도 난 정말 다행이다."

"죽고 싶지만 떡..."

아, 아닙니다.

 

어쨌든 고통은 고통입니다.

 

 

책 중간, 중간에는 토마스 산체스의 그림이 삽화로 나옵니다. 토마스 산체스는 쿠바의 화가입니다. 산체스의 그림은 빛과 색을 사용하여 평온함과 평화로움을 창조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무성한 정글, 고요한 해변, 잔잔한 물과 같은 열대 풍경이 돋보입니다. 그의 작품은 영적이고 신비한 느낌을 줍니다.

 

 

책을 읽으며 밑 줄 그은 내용과 저자의 인터뷰 영상을 띄우며 끝맺습니다.


 

효흡과 관련된 중요한 어휘들을 생각해봅시다. 영감을 뜻하는 단어 ‘인스퍼레이션insperation’에는 숨을 들이마신다,즉 흡입吸入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열망을 뜻하는 단어 ‘애스퍼레이션 aspirati에’에는 숨을 내쉰다,즉 흡출出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정신이나 활기를 뜻하는 ‘스피릿spirit’과 ‘스피리추얼spiritual’의 어원도 숨을 쉰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에서 출발했습니다.

 

나무 판때기에 누워 자는 건 참을 만했습니다. 말을 못 하는 것도 견딜 수 있었지요. 꼭두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괜찮았습니다. 형편없는 음식이나마 배불리 먹지 못하는 것도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채 쉼 없이 떠들고 울먹이고 비난하고 비판하고 독설을 날리고 의문을 제기하고 불평을 일삼는 내 생각과 홀로 마주하는 것, 그것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진정시키려 애써도 제 마음은 끊임없이 인신공격과 자기 회의로 반격을 가했습니다.

 

아잔 파사노 스님은 제게 나티코Natthiko라는 이름을 제안하며 마음에 드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지혜롭게 성장하는 자’라는 뜻이지요. 저는 그 이름이 무척 좋았고 지금도 여전히 좋습니다.

 

내려놓기의 지혜는 참으로 심오합니다. 내려놓을 수 있을 때 얻는 것은 끝이 없지요. 우리를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끼게 하고 외로움과 두려움을 부르는 생각들은 내려놓는 순간 힘을 잃습니다. 설사 그 생각이 ‘옳다’ 하더라도요. 물론 말은 쉽고 실천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가장 내려놓기 어려운 생각이 결국엔 우리에게 가장 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들여다보길 바랍니다.

 

그러나 마음의 고통이 내 안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더라도 아픔이 덜해지진 않습니다. 그 앎 자체로는 조금도 고통을 덜어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그 사실을 이해하면 고통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에게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믿지 말아야 하는 주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고통이 자기 안에서 출발한다는 통찰력을 갖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머리로는 알아도, 진심으로 받아들이려면 아주 겸손해야 합니다. 고통이 저 자신에게서 출발한다고 받아들여 버리면 이제 상황이나 다른 사람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때 비로소 새로운 질문이 떠오릅니다.

 

“나티코, 기적이 일어날 여지를 꼭 남겨두세요.” 그 순간 제가 꼭 들어야 하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잊고 있었던 진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스님의 말이 옳았습니다. 실제로 저는 모든 걸 통제하려 들고 있었습니다. 그럴수록 삶은 외롭고 고달프며 불안하고 초조해지는 법인데 말이지요.

 

저는 여러분이 손을 조금 덜 세게 쥐고 더 활짝 편 상태로 살 수 있길 바랍니다. 조금 덜 통제하고 더 신뢰하길 바랍니다. 뭐든 다 알아야 한다는 압박을 조금 덜 느끼고, 삶을 있는 그대로 더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무척 놀랐습니다. 아니, 두려웠습니다. ‘난 승복 차림으로 죽음 을 맞이할 승려인걸. 난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는 승려란 말이야.’ 그런데 마흔여섯 살에 갑자기 제 안에서 집에 가야 할 때가 됐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20년 전 에스파냐에서 5월 어느 일요일, 소파 에 앉아서 들었던 음성만큼 또렷했습니다.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잃을 게 너무 많았습니다. 제 인생 전체와 정체성이 사원 생활과 얽혀 있었습니다.

 

승려를 그만두기로 한 결정과는 무관했지만 당시 저는 몸이 아팠습니다. 특발성혈소판감소자반증ITP, Idiopathic Thrombocytopenic Purpura이라 불리는 특이한 자가 면역 질환에 걸린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좀 더 너그럽고 관대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계속 가혹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온전한 사랑을 베풀 수 없습니다.

 

이슬람교에는 금언이 참 많은데, 특히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Hadkh엔 이런 문구가 있어요. 알라신을 믿되 타고 갈 낙타는 묶어두라.” 재미있긴 하지만 그냥 웃자고 한 말은 아닙니다. 저는 이 지혜로운 금언을 좋아해서 늘 마음에 품고 다닙니다. 이분법적인 사고에 갇히면, 믿음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가령 소득신고를 할 땐 절대로 세상을 그냥 믿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구글에서 제 증상을 검색해봤으므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알고 있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준비를 하라는 신호가 왔습니다. 의사는 검사 수치들을 덤덤히 알려준 뒤 잠시 뜸을 들였습니다. 그리고는 결코 전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제게 말하려는 듯 힘겹게 입을 열었습니다. “비욘, 모든 징후가 ALS를 가리키네요.”

ALS. 근위축성측색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일명 루게릭병으로 알려졌지요. 최악의 시나리오였습니다.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단정적인 고백이었습니다. 저는 늘 바르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어왔습니다. 누군가가 그런 노력을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넌 지금까지 잘 준비해왔어. 아무런 후회나 미 련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거야. 걱정할 필요 없어.”

 

삶 속에서 결정 을 내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할 때도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을 늘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살아가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스웨덴에서는 안락사가 불법이므로 형제들과 저는 아버지의 뜻을 이뤄주려고 서둘러 절차를 알아보았습니다. 우리는 결국 스위스의 어느 기관을 찾았고, 그달 말쯤 날짜를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7월 26일에 바젤Basel에서 의사의 조력으로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하기로 했습니다. 막상 날짜를 받아 들자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왜 그리도 빠르게 흐르던지요. 제게 2018년 여름은 가장 무덥고도 슬픈 계절로 남았습니다. 그 뜨겁고 서글픈 여름을 달래준 상담사의 이름은 스포티파이(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였습니다.

 

이쯤에서 충고 한마디 하겠습니다. 화난 사람에게 절대로 내려 놓으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 말이 통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오히려 상대를 자극할 뿐이니까요. 내려놓으라고 말해야 할 상대는 자기 자신뿐입니다. 그때만 유일하게 효과가 있지요.

 

엘리사베트, 그때 아직 내 곁에 누워 있지 않다면 얼른 침대에 올라와서 나를 안아주구려. 그리고 내 눈을 바라봐요. 내가 이생에서 마지막으로 보는 게 당신의 눈이었으면 좋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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