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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조선 천문학자의 모험

by 자위심도 2025.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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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새로운 발견

영조 24년(1748년) 늦가을의 어느 맑은 밤이었다. 관상감의 젊은 천문학자 이수림은 창경궁 규장각 뒤편에 자리한 관천대에서 홀로 밤하늘을 관측하고 있었다. 스물여덟의 나이에 천문학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던 그는 정6품 관상감 천문학 별좌의 직책을 맡고 있었다.

"오늘도 변함없는 밤하늘이로구나."

그는 중얼거리며 천체의 움직임을 기록하던 중, 문득 낯선 빛이 눈에 들어왔다.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 사이, 전에 없던 밝은 별이 빛나고 있었다. 수림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다시 보았다.

"이럴 수가... 분명 어제까지는 없던 별인데..."

그는 서둘러 천문도를 펼쳐 확인했다. 수 년간 기록된 천문도 어디에도 그 위치에 별은 존재하지 않았다. 수림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것은 새로운 별의 출현, 즉 '객성(客星)'이었다. 조선 역사에서 객성의 출현은 중대한 사건으로, 반드시 임금에게 보고해야 하는 천문 현상이었다.

수림은 밤새 객성의 위치와 밝기를 세심하게 관측하고 기록했다. 그리고 동이 틀 무렵, 그는 자신의 발견을 관상감 제조인 박상준에게 보고하기 위해 서둘러 관상감으로 향했다.

 

제2장: 가로챈 공

"객성이라고? 그것도 북두칠성 근처에?"

관상감 제조 박상준은 50대 중반의 나이에 정3품 당상관의 지위에 올라 있었다. 그는 천문학보다는 정치적 수완으로 현재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고, 노론파의 강력한 후원을 받고 있었다.

"네, 제조님. 어젯밤 관측 중에 발견했습니다. 과거 기록에도 없는 위치에 새로운 별이 나타났습니다."

박상준은 수림이 가져온 기록과 도표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의 눈빛이 변했다. 객성의 출현은 중대한 천변이었고, 이를 처음 발견하여 임금에게 보고하는 이는 큰 공을 세울 수 있었다.

"음... 좋은 발견이구나. 내가 곧 임금께 보고하겠다. 네 공을 잊지 않겠다."

수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날 오후, 그는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박상준이 객성을 자신이 발견한 것처럼 임금에게 보고했다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분명히 제가 발견한 것인데..."

수림은 분노와 배신감에 떨었지만, 자신의 낮은 지위로는 제조의 행동에 맞설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작은 서재로 돌아와 고민에 빠졌다.

 

제3장: 의녀 연이

같은 시각, 내의원에서는 스물다섯 살의 의녀 김연이가 약재를 분류하고 있었다. 연이는 어려서부터 병약했던 어머니를 위해 약초와 의술을 배웠고, 뛰어난 재능으로 내의원의 의녀가 되었다. 그녀는 또한 밤하늘과 별자리에 관심이 많아 틈틈이 천문서적을 읽곤 했다.

"연이야, 오늘 큰 소식이 있다더구나. 관상감에서 새로운 별을 발견했다는구나."

동료 의녀의 말에 연이는 호기심을 느꼈다.

"새로운 별이라니, 정말인가? 어디에서 나타났대?"

"북두칠성 근처라던데. 관상감 제조 박상준이 발견했다고 하더구나."

연이는 그날 저녁, 약초를 구하러 나갔다가 우연히 한 젊은 남자가 혼자 중얼거리며 걷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바로 이수림이었다.

"저... 괜찮으신가요? 많이 괴로워 보이시는데..."

수림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약초 바구니를 든 단아한 모습의 여인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괜찮습니다. 그저 생각할 일이 있어서..."

"혹시... 새로운 별에 관한 생각인가요?"

수림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연이는 미소를 지었다. "오늘 궁에서 새 별 이야기로 떠들썩하더군요. 그런데 당신... 혹시 그 별을 처음 발견한 천문학자 아닌가요?"

 

제4장: 비밀의 동맹

수림과 연이는 한강변의 조용한 정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림은 자신이 객성을 발견한 과정과 박상준이 그 공을 가로챈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것은 명백한 부정이네요. 진실이 밝혀져야 해요."

연이의 단호한 말에 수림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어떻게요? 제조님은 정3품 당상관이고, 저는 정6품 별좌에 불과합니다."

"임금님께 직접 알리면 되지 않을까요? 영조 임금님은 공정하신 분으로 알려져 있잖아요."

수림은 고개를 저었다. "증거가 없습니다. 제 기록은 모두 제조님이 가져갔고, 이제 와서 주장해봐야 믿어주지 않을 겁니다."

연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의원에서 일하다 보니 대비전의 나인들과 가까워요. 그들을 통해 임금님께 이 사실을 전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수림의 눈이 희망으로 빛났다. "정말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하지만 그전에 확실한 증거가 필요해요."

수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관측한 자료의 사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별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연이는 미소지었다. "그럼 오늘 밤, 제가 직접 그 별을 관측해보겠어요. 내의원 뒤뜰에 작은 천문대가 있거든요."

 

제5장: 임금의 결정

사흘 후, 영조는 내의원 의녀가 전한 비밀 서신을 받았다. 서신에는 객성의 발견에 관한 진실과 함께 수림의 원본 관측 기록이 포함되어 있었다. 영조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다음 날 아침, 영조는 갑작스럽게 관상감의 관리들을 불러 모았다.

"듣자하니 최근에 새로운 객성이 나타났다고 하더군. 이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네."

박상준이 앞으로 나섰다. "네, 전하. 신이 발견한 객성은 북두칠성 근처에 나타났으며..."

영조가 그의 말을 끊었다. "그대가 직접 관측했다는 말인가?"

"아... 네, 전하. 신이 관측하였습니다."

영조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렇다면 그 별의 정확한 위치와 밝기의 변화에 대해 설명해보게."

박상준은 당황했다. 그는 수림의 기록을 보기만 했을 뿐, 실제로 별을 관측한 적은 없었다. 그는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 그것은..."

영조가 다시 말했다. "들으니 이수림 별좌가 이 별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고 하던데, 맞는가?"

박상준은 식은땀을 흘렸다. "네... 그가 도움을 주긴 했습니다만..."

"이수림 별좌를 불러라."

수림이 전전긍긍하며 앞으로 나왔다.

"이수림, 그대가 이 객성을 처음 발견했다는 말이 사실인가?"

수림은 잠시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대답했다. "네, 전하. 신이 먼저 발견하여 제조님께 보고드렸습니다."

영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미 진실을 알고 있다. 관상감은 천문을 살피는 중요한 기관이니, 정직하고 정확해야 할 것이다. 이 일로 인해 상벌이 있을 것이다."

 

제6장: 천문 대회

일주일 후, 영조는 전례 없는 결정을 내렸다. 객성의 발견과 관련된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공개 천문 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대회는 창덕궁 후원에서 열렸고, 관상감의 관리들과 학자들, 그리고 영조가 참석했다.

"오늘 밤, 우리는 새로운 객성에 대한 관측과 연구 결과를 공유할 것이다. 박상준 제조와 이수림 별좌가 각자의 관측 결과를 발표하고, 궁금한 점은 서로 질문하도록 하라."

먼저 박상준이 나섰다. 그는 수림의 기록을 바탕으로 준비한 내용을 발표했지만, 세부적인 질문에는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그의 설명은 모호했고, 일관성이 없었다.

이어서 수림이 나섰다. 그는 객성의 위치, 밝기, 색상의 변화를 상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이전 기록들에서 유사한 천문 현상이 있었던 사례들을 찾아 비교 분석한 결과도 제시했다.

"과거 세종 때와 명종 때에도 비슷한 위치에 객성이 나타났던 기록이 있습니다. 이를 분석해보면, 이번 객성은 약 200년의 주기로 나타나는 특별한 천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조와 참석자들은 수림의 해박한 지식과 철저한 연구에 감탄했다. 그때, 한 여인이 조심스레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연이었다.

"전하, 천문 현상에 대한 민간의 기록도 있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영조가 고개를 끄덕이자, 연이는 계속했다.

"저는 내의원 의녀 김연이라고 합니다. 제 고향 강원도에서는 200년 전부터 '수레바퀴 별'이라 불리는 천체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왔습니다. 이 별은 '긴 꼬리를 끌며 북두칠성을 지나가는 별'로 묘사되며, 이번에 나타난 객성과 매우 유사합니다."

연이는 자신이 수집한 민간 설화와 기록들을 제시했다. 그것들은 수림의 관측 결과와 놀랍도록 일치했다.

 

제7장: 진실의 순간

영조는 모든 증거를 검토한 후, 최종 결정을 내렸다.

"이 객성의 발견은 분명 이수림 별좌의 공이다. 더불어, 김연이 의녀가 제공한 민간의 지혜는 우리의 천문 지식을 더욱 풍요롭게 했다."

영조는 박상준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박상준, 그대는 타인의 공을 가로채고 임금에게 거짓을 고한 죄로 관직에서 파면하고 3년간 변방으로 유배를 보낸다."

이어서 영조는 수림을 바라보았다. "이수림, 그대는 관상감 정4품 천문학 제학으로 승진시킨다. 앞으로 객성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여 우리 조선의 천문학 발전에 이바지하라."

마지막으로, 영조는 연이에게 말했다. "김연이, 그대의 지혜와 용기에 감사한다. 내의원 주부의 직책을 내리니, 의술과 함께 천문 연구도 계속하기 바란다."

 

제8장: 수림성의 탄생

그로부터 몇 달 후, 수림과 연이는 관천대에서 함께 밤하늘을 관측하고 있었다. 객성은 이제 '수림성'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의 천문서에 기록되었다.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에요. 그 별이 우리의 운명을 이렇게 바꿀 줄은 몰랐어요."

연이의 말에 수림은 미소지었다. "그 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요."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북두칠성 근처에서 수림성이 반짝였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수레바퀴 별이 나타날 때마다 세상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고 해요."

"그렇군요. 이번에도 그 말이 맞았네요."

수림은 연이의 손을 조심스레 잡았다. 그들의 앞에는 미지의 별처럼 밝은 미래가 펼쳐져 있었다.

 

에필로그

영조 36년(1760년), 수림성의 발견으로부터 12년이 지난 어느 날. 이수림은 이제 관상감의 제조가 되어 있었고, 김연이는 내의원 제조의 자리에 올랐다. 두 사람은 결혼하여 슬하에 한 아들과 한 딸을 두고 있었다.

그들의 아들 이현은 아버지처럼 천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딸 이서는 어머니를 닮아 의술과 약초에 관심이 많았다. 가족은 종종 밤하늘을 함께 관측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 수림성은 언제 다시 나타날까요?"

열 살배기 현이의 질문에 수림은 미소를 지었다.

"200년 후면 다시 볼 수 있을 거란다. 그때는 너의 자손들이 그 별을 보게 되겠지."

"그들도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알게 될까요?" 여덟 살의 서가 물었다.

연이가 대답했다. "물론이지. 우리는 수림성에 대한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으니까. 별의 이야기처럼, 우리의 이야기도 오래오래 전해질 거야."

수림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별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 별은 이제 사라졌지만, 그 빛은 여전히 그의 삶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200년 후, 조선이 아닌 대한제국의 시대에 수림성은 다시 나타났다. 그때 이수림의 6대손인 이태연은 할아버지로부터 전해들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별'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천문 기록을 펼쳐보았다.

역사는 반복되고, 별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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